1600년대의 프랑스는 화려한 궁전과 지독한 가난이 함께 있는 나라였습니다. 전쟁과 굶주림 때문에 가족들은 가진 것을 모두 잃었습니다. 병든 사람들은 먹을 것을 줄 사람도 없이 집에 홀로 누워 있었습니다. 아기들이 교회 계단이나 파리의 거리에 버려졌고, 그 가운데 많은 아기가 죽었습니다.
한때 쉽고 편안한 삶을 원했던 한 신부가 그들에게로 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병든 한 가족
빈첸시오 아 바오로는 1581년 프랑스 남부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신부가 된 데에는 그것이 더 나은 삶으로 가는 길처럼 보였던 까닭도 있었습니다. 한동안 그는 부유하고 힘 있는 집안들을 위해 일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달라졌습니다. 1617년 그는 샤티용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신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설교하기 바로 전에 누군가가 근처에 온 식구가 병들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는 가족이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는 교회 사람들에게 그 가족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날 오후, 너무 많은 사람이 먹을 것을 들고 찾아가서 그 가족은 다 먹지 못할 만큼 음식을 받았습니다. 빈첸시오는 거기서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돕고 싶어 했지만, 첫날이 지나도 도움이 계속 이어지도록 누군가 그 일을 조직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을의 여성들을 모아, 날마다 돌아가며 병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과 돌봄을 가져다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사랑의 딸회
그 생각은 퍼져 나갔습니다. 파리에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같은 마음을 품은 과부 루이즈 드 마리약과 함께 일했습니다. 1633년 두 사람은 평범한 집안의 젊은 여성들을 훈련시켜, 병든 사람들의 집을 찾아가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간호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사랑의 딸회'라고 불렸습니다.
그 시절 교회를 섬기는 여성들은 대부분 세상과 떨어져 담장 안에서 살았습니다. 빈첸시오는 이 여성들이 거리로, 가난한 사람들의 집으로 나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그들의 수도원은 병든 사람들의 집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버려진 아기들
파리에서 빈첸시오는 거리에 버려지는 아기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기가 팔려 가거나 그냥 죽었습니다. 그와 사랑의 딸회는 그 아기들을 거두어 유모와 가정을 찾아 주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그들은 수천 명의 아이를 돌보았습니다.
빈첸시오는 166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거의 200년 뒤인 1833년, 파리의 젊은 학생 프레데리크 오자남이 친구들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 먹을 것을 나누는 모임을 시작하고, 그 모임에 빈첸시오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는 지금 세계 곳곳에 수십만 명의 회원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이가 푸드뱅크를 운영합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
예수님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일이 곧 예수님께 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ᄯᅩ 님군이 ᄃᆡ답ᄒᆞ야 ᄀᆞᆯᄋᆞ샤ᄃᆡ 내가 진실노 너희ᄃᆞ려 닐ᄋᆞ노니 너희가 내 동ᄉᆡᆼ 즁에 지극히 적은이 ᄒᆞ나의게 ᄒᆡᆼᄒᆞᆫ 거시 곳 내게 ᄒᆡᆼᄒᆞᆷ이라 ᄒᆞ시고
마태복음 25:40 · 셩경젼셔 1911
우리에게 주는 의미
빈첸시오의 큰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친절은 어느 좋은 오후 하루에 달려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계속 이어지도록 조직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한 번 돕고 나서 잊어버리는데, 그것은 사람다운 일입니다.
돕고 싶다면, 식사 당번 모임이나 푸드뱅크 봉사, 또는 매주 병든 사람들을 찾아가는 교회 모임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400년 전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빈첸시오가 품었던 바로 그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