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다스리던 나치당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를 장악하자, 유대인 가족들은 무서운 위험에 처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도망치려 했습니다. 그들을 받아 주려는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높은 산속에서, 한 마을이 받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기억하는 마을
르 샹봉 쉬르 리뇽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높고 추운 고원에 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프랑스 개신교도인 위그노였습니다. 수백 년 전, 그들의 조상은 신앙 때문에 쫓기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숨을 곳이 필요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을의 목사는 앙드레 트로크메였습니다. 그의 아내 마그다는 집안일과 많은 일을 꾸려 가는, 현실적이고 따뜻한 여성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또 다른 목사인 에두아르 테이스와 함께, 그리스도인은 쫓기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전하는 이야기는 1940년 겨울, 트로크메 부부의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시작됩니다. 겁에 질린 한 여성이 눈 속에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유대인이었고,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마그다는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 뒤로 피난민들이 계속 찾아왔습니다. 고원의 가족들은 그들을 농가와 다락방과 헛간과 기숙학교에 숨겨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가짜 이름을 받고 마을 학교에 다녔습니다. 사람들은 서류를 위조했고, 피난민들을 이끌고 산을 넘어 스위스로 데려갔습니다. 압박을 받아도 이 지역에서 입을 연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4년 동안 마을과 그 주변의 농가들은 수천 명을 숨겨 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이가 부모와 멀리 떨어져 겁에 질린 유대인 아이들이었고, 그 아이들은 자기들을 사랑해 주려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 대가
그 일은 위험했습니다. 1943년, 앙드레 트로크메와 에두아르 테이스는 체포되어 몇 주 동안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피난민 아이들을 위한 집을 운영하던 앙드레의 사촌 다니엘 트로크메는 체포되어 1944년 나치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도 마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990년,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기리는 이스라엘의 기념관 야드 바솀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드문 영예를 주었습니다. 몇몇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열방의 의인'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
많은 마을 사람은 나중에 자기들을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돕는 것은 그저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릴 ᄯᅢ에 너희가 먹을 거슬 주고 목ᄆᆞ를 ᄯᅢ에 마실 거슬 주고 나그내 되엿슬 ᄯᅢ에 ᄃᆡ졉ᄒᆞ고
마태복음 25:35 · 셩경젼셔 1911
르 샹봉 사람들에게는 문 앞에 선 나그네가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의미
유럽의 대부분의 교회는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평범한 농부와 교사들이 사는 한 마을은, 위험에 처한 나그네들을 자기 사람으로 여기기로 함께 마음먹을 때 교회 전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시작하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에게 문을 열어 준다면, 당신은 1940년 눈 내리던 밤에 마그다가 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