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을 다스리던 나치 정부가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를 점령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잡아들여 수용소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하를럼이라는 도시의 작은 시계 가게 위층에서, 한 그리스도인 가족이 문을 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시계 기술자들
코리 텐 붐은 1892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아버지 카스퍼, 언니 벳시와 함께 가족이 운영하는 시계 가게 위층에서 살았습니다. 코리는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시계 기술자 자격을 받은 여성이었습니다. 가족은 날마다 함께 기도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든 받아 주는 집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유대인 이웃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자, 텐 붐 가족은 자기 집에 사람들을 숨겨 주기 시작했습니다. 집 꼭대기에 있던 코리의 침실에 목수들이 가짜 벽을 세우고 그 뒤에 비밀 방을 만들었습니다. 그 방은 너무 좁아서 몇 사람만 겨우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경보음이 울리면 숨어 있던 사람들은 계단을 뛰어 올라가 그 안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 뒤 2년 동안, 가족과 그들과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많은 유대인과 네덜란드 저항 운동가들을 숨기고 옮기는 일을 도왔습니다. 그들이 약 800명의 목숨을 구하도록 도왔다고들 합니다.
체포
1944년 2월 28일, 누군가 그들을 밀고했습니다. 경찰이 집을 덮쳐 가족을 체포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끝내 비밀 방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안에 숨어 있던 여섯 사람은 거의 이틀 동안 숨죽이고 있다가 나중에 빠져나갔습니다.
코리의 아버지 카스퍼는 여든네 살이었습니다. 그는 체포된 지 열흘쯤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코리와 벳시는 독일에 있는 여성 수용소인 라벤스브뤼크로 보내졌습니다. 약하고 병든 벳시는 1944년 12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칠 뒤, 코리는 서류상의 실수로 풀려났습니다.
용서
전쟁이 끝난 뒤, 코리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1947년, 독일의 한 교회에서 이야기를 마친 뒤 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왔습니다. 코리는 그가 라벤스브뤼크의 간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말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코리는 나중에, 자기 힘으로는 용서하는 마음을 느낄 수 없었다고 썼습니다. 그녀는 기도했고, 그러고 나서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1967년,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기리는 이스라엘의 기념관 야드 바솀은 그녀를 '열방의 의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렸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한 이유
예수님은 나그네를 맞아들이는 것이 곧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ᄯᅢ에 너희가 먹을 거슬 주고 목ᄆᆞ를 ᄯᅢ에 마실 거슬 주고 나그내 되엿슬 ᄯᅢ에 ᄃᆡ졉ᄒᆞ고
마태복음 25:35 · 셩경젼셔 1911
텐 붐 가족은 자기들의 목숨을 걸고 나그네들을 맞아들였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의미
그 시절 많은 그리스도인은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텐 붐 가족이 특별해서 더 용감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문 앞에 선 사람이 자기들의 안전보다 더 소중하다고 마음먹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런 선택 앞에 서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문을 열어 주어야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할 수 없는 무언가를 안고 있다면, 코리는 자기도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고 말해 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