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간호는 점잖은 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병원은 더럽고 위험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난하거나 행실이 좋지 않은 여자들만 그런 일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잣집 젊은 여성이 간호사가 된다는 것은 거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 부잣집 젊은 여성이 그래도 그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라고 하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열여섯 살의 부르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1820년 영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열여섯 살 때, 그녀는 개인 기록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시고 자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부르셨다고 적었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아직 몰랐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그녀는 그 답이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가족은 기겁하며 그녀를 막으려 했습니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1850년 그녀는 독일의 카이저스베르트로 가서, 병든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그리스도인 여성 공동체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스쿠타리의 병원
1854년, 영국은 흑해에 있는 반도인 크림에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다친 영국 병사들이 더러운 군 병원에서 거의 아무런 돌봄도 받지 못한 채 죽어 가고 있다는 소식이 런던에 전해졌습니다.
플로렌스는 간호사 38명을 이끌고, 지금의 이스탄불에서 바다 건너편에 있던 스쿠타리의 군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녀가 본 것은 끔찍했습니다. 병사들은 자기 오물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쥐가 돌아다녔고, 담요는 턱없이 모자랐고, 깨끗한 물은 거의 없었습니다. 건물 밑의 하수관은 망가져 있었습니다.
그녀와 간호사들은 바닥을 문질러 닦고, 붕대를 빨고, 음식을 만들고, 물자를 보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밤이면 그녀는 작은 등불을 들고 혼자 긴 병실을 걸으며 병사들을 살폈습니다. 병사들은 그녀를 "등불을 든 여인"이라고 불렀습니다.
1855년, 정부가 보낸 조사단이 와서 하수관과 물을 고쳤습니다. 그 뒤로 죽는 병사들이 훨씬 줄었습니다.
새로운 간호사
전쟁이 끝난 뒤, 플로렌스는 숫자와 도표를 사용해 깨끗한 병원이 생명을 살린다는 것을 지도자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1860년 그녀는 런던의 성 토머스 병원에 간호사 훈련 학교를 열었습니다. 간호는 기술이 필요한, 존중받는 직업이 되었습니다.
1907년, 그녀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영국 왕에게서 메리트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191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한 이유
그녀는 임금에 대한 이야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병든 사람을 돌보는 것이 곧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버셧슬 ᄯᅢ에 옷을 닙히고 병 드럿슬 ᄯᅢ에 도라보고 옥에 가쳣슬 ᄯᅢ에 와셔 보앗ᄂᆞ니라
마태복음 25:36 · 셩경젼셔 1911
우리에게 주는 의미
플로렌스가 늘 부드럽고 조용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사납고 고집이 세고 함께 일하기 힘든 사람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녀가 완벽했던 것처럼 꾸밀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바닥을 닦고 깨끗한 물을 달라고 따지는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픈 사람 곁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면, 당신은 그녀가 한 일의 작은 조각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소중하고,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