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미안하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또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당신은 지쳤고, 언제쯤 그만해도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친구 한 사람도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베드로의 질문
베드로는 배를 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어부였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었지요. 어느 날 베드로가 예수님께 와서, 자기에게 계속 잘못하는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고는 자기가 먼저 숫자를 내놓았습니다. 일곱 번이었습니다. 꽤 넉넉한 숫자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훨씬 일찍 멈추니까요.
예수ㅣ ᄀᆞᆯᄋᆞ샤ᄃᆡ 내가 네게 닐ᄋᆞ노니 닐곱 번 ᄲᅮᆫ 아니라 오직 닐흔 번식 닐곱 번이라도 ᄒᆞᆯ지니라
마태복음 18:22 · 셩경젼셔 1911
일흔 번씩 일곱 번은 490번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목록을 적어 두었다가 491번째에 멈추라고 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친구 사이에서 그렇게까지 셀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로 그 점이 핵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는 것을 그만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
그 말씀 바로 뒤에 예수님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셨습니다. 한 종이 임금에게 평생 갚아도 못 갚을 만큼 큰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임금은 그 빚을 다 없애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은 밖으로 나가서, 자기에게 조금 빚진 사람을 만나자 목을 움켜잡고 갚으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용서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진 작은 빚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용서가 뜻하지 않는 것
용서한다는 것은 아프지 않았던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잘못이 괜찮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계속 상처받는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면서도 안전한 거리를 둘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면서도 그 사람이 한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려놓으라고 하신 것은 숫자였습니다. 모든 잘못을 적어 두고, 언제든 소리 내어 읽을 수 있게 들고 다니는 그 목록 말입니다. 그런 목록을 들고 다니고 있다면, 이제 내려놓아도 됩니다. 그것은 지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두 손을 다시 돌려받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