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기도할 때가 되면 얼어붙습니다. 잘못 말할까 봐 두렵고,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 옛날 말투와 거룩한 목소리로 말하는 올바른 방법이 따로 있는데 나는 그걸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걱정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보여 주려고 기도하던 사람들
예수님 시대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길모퉁이에서 소리 내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말을 많이 할수록 하나님이 더 잘 들으실 거라 생각하고 길게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산비탈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다가 이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하나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ᄯᅩ 긔도ᄒᆞᆯ ᄯᅢ에 외방 사ᄅᆞᆷ과 ᄀᆞᆺ치 즁언부언ᄒᆞ지말나 뎌희는 말을 만히 ᄒᆞ여야 드르실줄 아ᄂᆞ니
마태복음 6:7 · 셩경젼셔 1911
그런 다음 예수님은 그 까닭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구하기도 전에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르시던 소식을 알려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들어 주시도록 말을 딱 맞게 고르려고 애쓰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듣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주신 짧은 기도
바로 그 뒤에 예수님은 그들이 드릴 기도를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날 주기도문이라고 부르는 기도입니다. 짧은 기도입니다. 오늘 먹을 양식을 구합니다. 용서해 주시기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삶이 힘들어질 때 도와주시기를 구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긴 연설도 없고, 특별한 목소리도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그 기도를 드려도 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씀드려도 됩니다. "돈 때문에 걱정돼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오늘 아침을 주셔서 감사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 여기 있어요."
이런 말도 진짜 기도입니다. 차 안에서나 부엌 식탁에서 드리는 솔직한 몇 마디도 큰 교회에서 드리는 긴 기도만큼 소중합니다.
잘못하고 있을까 봐 걱정된다면, 그 걱정은 내려놓아도 됩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그 부담을 덜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말에 점수를 매기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러 온 것만으로도 기뻐하십니다.